이태리에서 돌아온 날이 2016년 11월 11일이니 오늘이 꼭 204일 째다.부지런히 돌아다니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12월 5일, 동물병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전에 했던 일과는 다르니 뜬금없이 왜 동물병원이냐고 묻는 이도 있었지만 그저 밀라노에 있는 탑을 볼 수 없으니 대리만족이라도 하기 위함이었다. 출근 첫 날, 며칠 전 수술했던 햄스터가 죽었다. 보호자는 이렇게 될 거였으면 왜 수술을 했냐고 따졌다. 분노와 억울함이 섞인 목소리는 진료실을 뚫고 나왔다. 보호자를 보내고 진료실에서 나온 큰 원장님의 말에 따르면 햄스터는 수술을 해야하는 상황이었지만 일반적으로 2년 밖에 살지 못하는 햄스터의 나이가 이미 두 살을 넘긴데다가 마취와 수술 위험성이 워낙 큰 지라 수술을 거절했다고 했다. 그러나 작은 원장님..
2017.04.05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짧은 순간 많이 것이 바뀌어 있었다. 가족은 20년 넘게 살았던 동네를 떠나 이사를 갔고 나는 한 달 더 일을 한다며 직장 근처의 고시텔을 얻었다. 우리 집이었던 곳에 더 이상 가족들이 없다는 사실이 낯설고 한 달간 정을 붙여야 할 새로운 방도 어색하기만 하다. 그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구석구석 내 손이 닿으면 편안함이 생긴다는 사실을 깨닫고 청소를 시작했다. 빈 공간에 내 물건을 채워넣으니 조금은 안심이 됐다. 4개월 간 주간근무를 하다가 갑자기 야간 근무를 하게 됐다. 바쁘고 떠들썩한 주간과 다르게 야간은 의자 삐걱거리는 소리도 크게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24시간 편의점의 불빛과 간간히 지나다니는 자동차 소음을 제외하면 병원 바깥도 너무나 조용해 내가 머무..
어떤 관계도 온 마음을 다해 친밀하고자 하는 헌신 없이는 첫걸음을 떼지 못한다. 그러나 사랑이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여전히 수많은 생각들을 혼자 간직할 줄 모른다고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우리는 정직성에 너무 감명하는 탓에 정중함의 미덕들을 망각한다. 아끼는 사람이 우리의 본성에서 상처를 줄 수 있는 면과 항상 전면적으로 마주치지 않게 하려는 욕구 말이다. 어느 정도 자제하고 자기편집에 조금 열성을 보이는 것으로서의 억제는 솔직한 고백 능력 못지않게 당연히 사랑에 포함된다. 스스로 비밀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 '정직함'을 내세워 상대방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상처가 되는 정보까지 털어놓는 사람은 절대 사랑의 편이 아니다. 또한 파트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한 일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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