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62]노토, 헬프엑스의 시작
2016.09.16
어제 저녁과 마찬가지로 주차장에는 우리 차와 캠핑카 두 대가 전부였다.
한 남자가 한쪽에서 낙하산 같은 것을 펼쳐 놓고 대형 선풍기같은 것에 연료를 붓는건지 석유같은 냄새가 풍겼다.
설마 날아오를까, 그가 무얼하려는 것인지 가만히 보았다.
시선을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날기 전까지 한 번도 우리쪽을 보지않았다.
프러펠러에 시동을 걸고 배낭을 메듯 둘러맸다.
무언가 잘못되었는지 두 세 차례 반복하고는 저만치 달려가다 능숙하게 둥실 떠올랐다.
내가 날아오른 것 같은 기분이 돼서 '우와아-'.
바람을 타고 속도와 방향을 조절하며 점만큼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보며
하늘로 사라진 그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하늘을 나는 일'을 얼마나 해온 것일까?
왜, 어디서, 누구로부터 배운 것일까? 혼자 생각해 낸 것일까?
그는 매일 이곳에서 날아오르는 것일까?
행동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던 것으로 보아 그는 분명 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반복했던 일일 것이다. 초짜였다면 조금은 망설였을테니까.
자유롭게 나는 '새'일지라도 첫 날갯짓을 시도하다 땅으로 떨어지듯, 그에게도 분명 아기새와 같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목숨걸고 하지 않으면 어려울 일이다.
아무리 액티비티를 좋아하는 나지만 (목숨이 두 개가 아니기에) 자신도, 확신도 없이
무턱대고 프로펠러와 낙하산(?) 하나로 하늘을 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가 멀어지고 작은 점만해지자 우린 바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길가에 서서 다시 뒤를 돌아보니 방향을 옮긴 그가 한참 비행중이었다.
그는 얼마나 날다가, 어디로 착지하게 될까?
그가 보고있는 풍경은 어떨까? 비행이 그에게 남기는 것은 무엇일까?
해변가를 걸어 '바'로 향하는 길, 프로펠러를 메고 유유히 하늘로 떠났던 그가 도착했다.
떠났던 곳과 아주 가까운 해안가에 착지한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사막에서 유목민이, (그 옛날 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전의) 바다에서 항해사들이
해와 달과 별자리와 바람과 지형을 통해, 즉 자연의 이야기를 통해 나침반 삼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듯
그 또한 그러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모양이다.
노토로 향하는 길에 희연이가 추천해준 Spiaggia Vendicari(스피아쟈 벤디카리)라는 곳에 들렀다.
이곳은 자연보호구역으로 철새들이 머물다 가기도 하는데 주로 야생 홍학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시기에는 홍학이 그리 많지 않다고 들었지만 운좋게 예상보다 많은 홍학들이 노닐고 있었다.
그늘이 없어 9월의 땡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산책로를 따라 십분 쯤 걸으면 자연보호구역이 나타난다.
개는 야생 조류를 공격할 위험이 있어 아쉽게도 탑은 들어갈 수 없었다.
탑을 입구 쪽에 묶어두고 온 게 마음에 걸렸는지 그는 발걸음을 더 떼지 못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하는 수 없이 혼자 다녀오게 되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부부가 가이드에게 설명을 받으며 홍학을 관찰하고 있길래, 귀를 쫑긋세워 훔쳐들었다.
지금은 1도 기억나지 않으니 메모를 해뒀으면 좋을 뻔했다고 이제와서야 생각한다.
길의 끝에 있던 낡은 건물은 박물관이었다.
그곳에서 눈이 멈추는 사진이 있어 무심코 카메라를 들었는데, 우연히 이 장소를 들르게 될 줄은 그 순간엔 몰랐다.
박물관의 출입구 쪽에는 기념품이 판매되고 있었다.
수익금은 생태계 보호를 위해 사용되고 있는데 그 중 평화의 표식이 달린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기념으로 두 개를 사서 커플목걸이 혹은 팔찌로 쓰려했는데 아차 지갑을 안가져왔다.
벤디카리 입구로 돌아갔을때 그는 나무가 만든 그늘 아래 탑과 함께 서있었다.
피사의 캠핑장에 갔을 때에도 그렇고, 그는 결코 탑을 혼자두지 않거나 혹은 못한다.
그런 그가 좋았지만 시간이 흐르니 살짝 서운함이 밀려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크게 특별할 것은 없지만 내부를 보지 못한 그에게 대신 내가 본 것들을 말과 사진을 통해 전해주었다.
노토를 향해 출발.
이틀만에 또 밥을 사먹다니, 이렇게 펑펑(?) 써도 되는건가 싶지만 순간의 행복은 중요한 것이니
결국 노토 시내에서 두 번째 외식을 하기로 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식당들은 어딜가나 북적였다.
맛집인가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손님이 많은가 많지 않은가는 분명 오류를 범할 수 있지만 가장 쉬운 선택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식당선택의 자유가 없는 단체관광객이 대부분이라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맛에 큰 편차가 없고 저렴할 어느 트라토리아 테라스에 앉았다.
식당 안은 바깥보다 넓지만 앉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가게 주인의 아기가 유모차에 앉아 낯선 동양인을 바라볼 뿐.
그는 식당에서 파스타를 먹을 때면 주로 볼로네제 혹은 카르보나라를 주문한다.
오늘도 언제나처럼 카르보나라를 선택했다.
스테이크가 저렴하길래 나는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소고기를 주문했다.
고기가 종잇장처럼 얇았지만 두꺼운 고기보다 씹고 자르기 편했고 고기는 고기인지라 그런대로 먹을만 했다.
'당신이 먹었던 가장 맛있는 음식은 무엇인가'하고 물으면 금새 답이 나오는가?
언젠가 한 달을 금식했던 사내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있다.
그는 한 달만에 먹었던 미음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의 글을 보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며 일주일 간 금식을 감행했으나 24시간만에 편의점으로 달려가고야 말았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생각나는 추억의 음식과는 별개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답하기 어려운 걸 보니, 언젠가 다시 시도해봐야 겠다.
길에 누워있던 개는 탑이 다가가 얼쩡거려도 죽은듯 눈 한번 뜨지 않았다.
누군가가 놓아둔 물 한 컵이 얼굴 아래에 놓여있었지만 세상 모든게 귀찮다는듯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헬프엑스 호스트와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기로 해서 아직 시간이 꽤 남았지만
그에 비해 노토는 작은 마을이었다.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셨으니 두오모 맞은편 그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남녀가 두오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아니 찍히고 있었다.
그는 어느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커플이라고 하기에 어딘가 어색하다며 어느 웨딩회사의 모델일 것이라 추측했다.
그러나 얼마 뒤 가족들과 기꺼이 들러리가 되어준 친구들이 등장했다.
저들이 모두 웨딩사의 컨셉은 아닐터였다.
건강하게 탄 신랑의 피부를 보니 그가 시칠리아 출신이고 신
부를 비롯한 그녀의 친인척의 머리색이 금발인 것으로 보아 영국, 프랑스, 북유럽, 캐나다 등 북쪽의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는 내게 부럽느냐고 물었다.
어떤 부분을 부럽냐고 물은 것일까.
내가 결혼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걸 그와 얘기한 적이 있으니 결혼이 부럽냐고 물은 것은 아닐 것이다.
시칠리아에서의 화려한 웨딩이 부러운 것이냐고 물은걸까.
그렇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다.
저들은 그러한 웨딩을 꿈꿔 온 사람이기에 행복하겠지만
내가 저기에 서있다고 생각하면 영혼이 빠져나가 껍데기만 남은 채 웃고 있을 것 같았다.
시선이 부담스러워 쥐구멍을 찾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상상했던 것만큼 기쁘지 않아도 여기까지 저질러버렸으니 연기라도 해야한다는 마음의 짐은 더더욱 사절이다.
만약이라도 결혼을 하게 된다면 지금처럼 여행을 다니면서 어느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하고 싶다.
동네 옷가게에서 하얗고 깔끔한 원피스, 그리고 셔츠와 나비넥타이를 사서 어느 숲속이건, 성당이건 좋으니
온전히 둘만의 서약을 속삭이고 싶다.
서운해할지도 모를 가족들을 위해 여행에서 돌아가면 함께 식사를 하고 사진을 찍는 것까지.
때로 그는 내게 무언가를 해줘야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띠동갑 넘는 나이차때문일까.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때문일까.
물론 나도 그가 갖고 싶은 걸 사주고 싶고, 하고 싶은 걸 해주고 싶다.
가끔은 해줄 수 없는 상황때문에 속으로 신세한탄을 하기도 하지만
그도 이같은 생각때문에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이라면 (미안하고 고맙지만) 생각만으로도 기운 빠지고 서글퍼진다.
사랑하는 이의 짐이 되는 일은 결코 사양한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갈테니 그리 약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길.
뭣이 중한디, 우리는 항상 그 말을 중점에 두고 살아야 겠다.
여튼 여행도중 그간 봐왔던 것과는 다른 결혼식을 구경하는 것은 흥미로웠다.
클락션을 빽빽울리며 도로를 달리는 것만 제외하면.
노토 시내를 벗어나 해변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낮잠을 잤다.
창문을 내리고 밖으로 뻗은 그의 발을 나뭇가지인줄 착각한 잠자리도 낮잠을 자려는 모양이었다.
그는 아주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지만, 나는 햇볕이 눈부셔 잠들 수가 없었다.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다시 노토 시내로 향했다.
젤라또라기 보다 슬러쉬와 비슷한 시칠리아의 그라니따(Granita Siciliana)를 나눠 마시며 호스트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자 눈이 마주치는 사람마다 '저 사람인가' 추측하기 시작했다.
만나기로 했던 시간보다 20분이 지나 '오지 않으면 어디로 향해야 하나' 생각할 무렵이었다.
탑이 다른 개에 다가가 인사를 나눴다.
턱수염을 곱게 땋은 개의 주인은 우리의 이름을 불렀다.
호스트 미쉘을 만난 순간이었다.
미쉘의 옆에는 동양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또 다른 헬퍼인 케이시, 동양계 미국인이었다.
시칠리아 노토 시내에 동양인 셋과 서양인 하나, 개 두 마리라니 어쩐지 재밌는 조합이었다.
우리는 미쉘의 차를 따라 깊숙한 산골짜기로 들어갔다.
미쉘이 주소를 알려주지 않고 굳이 시내로 우리를 데리러 나온 것이 의아했으나
주소가 없는 곳이라는 그의 설명을 들은 후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주소를 알았더라도 이런 산골짜기라면 찾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시내에서 20분 정도 왔을까.
미쉘의 보금자리에 도착했다.
미쉘의 반려견 에코는 정식으로 환영인사라도 하듯 우리를 다시 한번 반겨주었다.
미쉘의 집은 천년 전의 건물로, 벽만 남은 것을 보수공사해 지붕을 만들었다고 했다.
외관상 하나의 집이지만 방은 두 집처럼 분리되어 있었다.
하나는 미쉘이, 하나는 케이시가 사용하고 있었지만 케이시는 오늘부터 그녀가 가져온 텐트에서 잘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일주일 간 머물게 될 방 입구쪽에는 가스렌지와 물건이 마구잡이로 쌓인 창고(?)가 있고
커튼의 용도로 덮인 천을 걷어내면 방이 나온다. 분리형 원룸같은 구조이다.
방에는 낡은 침대 두 개와 테이블, 의자, 쇼파가 있었다.
모든 가구에는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먼지가 쌓여있었고 침대는 누우면 무너질 것처럼 삐그덕 소리가 났다.
벽을 타고 뭔가가 기어내려올 것 같아 양 옆 벽에 각각 놓인 두 침대를 중앙으로 모아 가까이 붙였다.
일단 먼지가 가득한 침대 커버를 털어 다시 깔고 그 위에 우리가 가져온 침낭을 깔았다.
베드버그의 무서움을 앞서 경험한 적이 있어 두렵기는 했지만
미쉘에게 괜한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아 그도 나도 현실을 받아들이는 편을 택했다.
어쨌든 갈 곳 없는 우리를 받아준 유일한 호스트 아닌가.
게다가 케이시는 몇 주간 이곳에서 불평도, 별 탈도 없이 지냈던 게 아닌가.
나는 그렇다치고 그는 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생각보다 덤덤했다.
저녁식사로 김치찌개를 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교환학생을 했던 적이 있었던 케이시는 한식이 그리웠다고 한다.
(나에 비해) 삶의 경험치가 많은 그는 익숙하게 코펠에 쌀을 넣고 물을 맞춘 후 뚜껑을 덮은 후 큰 돌을 올려 불을 붙였다.
냄비 밥에 돌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나큰 것이었다.
그가 김치를 썰어 볶고 물을 끓이고 밥을 하는 동안, 나는 마늘을 까서 다지고 양파를 썰며 보조를 맡았다.
메인요리는 김치찌개, 밥, 반찬으로 김을 손으로 쭉쭉 잘라 조촐한 한식을 차렸다.
김치찌개를 먹어본 케이시도, 처음으로 맛보는 미쉘도 생각보다 맛있게 먹었다.
배가 고팠던건지 맛있어서 그랬던건지 우리 모두 남김없이 그릇을 비웠다.
이미 해가 저물어 스탠드와 손전등에 의지하지 않으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 깔렸기에
그릇은 미쉘이 설치한 세면대에 담궈두었다.
약간의 현대문물이 있긴 하지만 이곳은 거의 자연 그대로의 삶이 존재한다.
핸드폰도 잘 터지지 않고 전기가 없으므로 충전할 곳은 없다.
화장실을 가고 싶다면 적당한 곳에 낫으로 땅을 파고 볼 일을 본 후 다시 덮는다.
플라스틱 통에 나무껍질을 넣고 구멍을 낸 나무판자를 올려 만든 변기가 있긴 하지만 사용한 흔적은 없다.
물이 밑으로 흘러 땅으로 흡수되도록 나무로 발판을 만들고
개울에서 끌어올린 물을 고무호스로 연결해 만든 샤워장이 있다.
샤워장이라고는 하지만 커튼 한 장없는 야외이고 찬 물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씻을 수 있는 곳이 있어 다행이다.
두 번의 우프경험은 있지만 내게도 헬프엑스는 처음이었다.
농장마다 분위기와 환경은 전혀 다르지만 이곳은 뭐랄까, 문명이 닿지 않은 곳이었다.
그에게는 첫 농장이라 조금 가혹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한 번쯤 그려보았던 자연의 삶을 체험해보는 것도 괜찮겠지.
기묘하게도 이 세상에 우리만 존재하는 것 같은 고요함 속에
이제서야 사람사이를 여행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