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태리워홀

[D+353]함께인듯 홀로

나마리, 2016. 12. 4. 18:29





2016.09.07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났기 때문일까.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이른 아침에 눈이 떠졌다.

일어나는 것이 고통스럽기는 커녕 오늘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

누구를 만날까, 어디까지 닿게 될까 설렌다.

마냥 설레기만 한다면 거짓말이고, 막연함에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아무데서나 차를 세우고 잠들었던 곳에서 조금 내려오니 

소렌토인지, 어디인지 모를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산책을 마친 우리는 다시 저 안으로 들어갔다.





         






좁고 기다란 계단을 내려와서야 그것이 거대한 울타리였다는 것을 알아챘다.

소렌토에서 가장 낮은 곳, 선착장에 도착했다.

여기서 카프리 섬으로 갈 수 있는 배를 탈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가진 자금으로는 탈 수 없겠지만 혹시나하는 마음에 가격표를 확인해봤다.

편도 14.80 / 왕복 28.10

역시나 ..





지금의 여행만으로도 만족해야지, 하면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 마음을 들켰나. 그는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런 그의 마음이 나를 더욱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아 불편했지만,

카프리에 갈 수 없어 너무도 아쉬웠던 것은 사실이라

애써 괜찮은 척, '꼭 가보고 싶으면 언젠가 다시 오겠지' 하며 넘겼다. 












다시 출발하려 할 때, 곤란해 보이는 한 아주머니를 보았다.

자동차 타이어에 구멍이 난 듯 했다.

자동차 정비에 자부심이 있는 그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말했다.

"Vuole aiutare? 제가 도와드릴까요?"



아주머니보다도 등치가 작은 아모는 능숙한 솜씨로 순식간에 타이어를 교체했다.

아주머니는 유럽식 인사로 그를 안아주고는 차를 몰고 떠났다.

그는 새까매진 손으로 돌아왔다.


자동차 배터리가 나갔을 때 우리를 도와줬던 누군가의 고마움을 이렇게 갚는 건가 싶지도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별개겠지.

그래도 어떤 이들의 선행이 작은 날갯짓이 되어 시공간을 뛰어넘어 

다른 이들에게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말피 해안도로를 달렸다.

친퀘테레를 상기시키는 절벽마을이 장난감처럼 이어져 있었다.

셔터는 열심히 눌렀지만 나는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 찍을 수가 없었다.

잠시 주차를 하고 찍으려고 해도 주차할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결국 우리는 계속해서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자동차 여행이 주는 편리함도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아쉬움을 견뎌야만 했다.

(구글에 검색하면 너무나 예쁜 사진이 많으니 필요하면 그것으로 기억을 대신해야지..)














































아말피 역시 주차할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내게 먼저 둘러보고 있으라고 하고 그는 주차자리를 찾아 헤맸다.

가이드로 일하는 그가 마치 손님대하듯 하는 것은 그의 오랜 습관때문이겠지만,

둘이 왔으면서도 혼자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이 여행을 나와 하고 싶긴 한 것일까?

그저 내가 가고 싶어하니까, 약속했으니까 온 것일까?

그도 나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적당한 거리는 대체 어디쯤일까.

그러나 일단 화장실을 가야겠기에 서운함을 뒤로하고 냉큼 먼저 마을로 들어섰다.









































































성 안드레아 대성당.

사진촬영금지 구역이지만 모두들 당당히 사진을 찍고 있다는 핑계로 두 장, 촬영하고 말았다.

여태껏 많은 예수상을 봐았지만, 오늘에서야 기묘한 생각이 들었다.


예수상과 그림은 셀 수도 없이 많은데, 그 예수의 모습들이 과연 한 인물의 얼굴을 하고 있을까.

여러 사람이 한 인물을 보고 똑같은 얼굴을 그려내기는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어쩌면 모든 예수의 얼굴이 다를 지도 모른다.

내면에는 각자의 신이 있을테고, 그것이 전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상상하는 완벽한 도덕체를 스스로 만들어 신격화하는 걸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같은 존재라고 믿는 것이다.

문자화 한 교리조차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의 신이라고 해도 사람 수만큼의 여러가지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도를 드리고 있는 이들은 자신의 내면세계와 대화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짧은 시간동안 혼자 부지런히 걸으며 오가는 사람들을 찍었다.

어떤 이는 아내와, 어떤 이는 부모님과, 친구들과, 남자친구와 여행을 왔다.

그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일상에서도 혼자보다 함께 있는 것이 더 좋기때문에 함께하는 거 겠지?

나는 남자친구와 여행을 왔다. 처음이다.

그런데 왠지 꼭 즐겁다고 할 수가 없다.





























































아말피를 떠나려는데 부녀로 보이는 이들이 빠져나가는 차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뒷자석엔 짐이 좀 있었지만 우리는 그들을 태우고 목적지를 물었다.

아말피에서 고작 5분 거리에 있는 또 다른 마을이었다.

그들은 그 곳에 사는 듯 했다.

그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물어, 한국인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딸은 언니가 샤이니를 좋아한다며, 샤이니를 아는지 물었다.

sono molto famoso 응 완전 유명해.



이탈리아 남부에 한류열풍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바리 출신인, 

메리에게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샤이니 노래를 틀어주려 했으나 우리의 핸드폰엔 샤이니 노래가 들어있지 않았다.



만남은 순간이었지만 즐거웠다.

그들을 만난 덕분에 우리는 우리가 마음을 활짝 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한가지, 자꾸만 계산을 하게 되는 쉐어카와는 달리 히치하이커를 태우는 것이 마음 편하고 즐겁다는 사실.













































































어느 바닷가에 앉아 바나나 한 개로 배를 달랜 후, 한참을 남쪽을 향해 달렸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에 차를 세웠다.

숲과 바다가 함께 있는 곳이었다.























<Lido Arenella, Via Mario Arillo>







익숙해진 손놀림으로 식사준비를 했다.

오늘의 메뉴는 간짬뽕과 햇반

우리는 매운 음식을 잘 못먹지만, 이 날의 간짬뽕과 단무지의 조화는 잊혀지지 않는다.

다 먹고 나서도 아쉬움에 애꿎은 숟가락만 쪽쪽 빨았다.

그러나 배고파도 아직은, 이러한 삶이 좋다. (나만)














식사를 끝내고 빈 페트병에 담아왔던 물로 설거지를 마쳤다.

해변가에 한적한 바가 있어 화장실도 쓸 겸, 커피도 마실 겸 들렀다.

9월이라고 하지만 아직 따뜻한 편인데 주민 몇을 제외하고 해변은 텅텅 비어있었다.

이곳은 주민이 아니면 굳이 찾을 이유가 없는 곳이라서 일까?

간간히 지나가는 주민들은 우리를 유심히 쳐다봤다. 











































모래사장에 누워 잠깐 눈을 붙이겠다던 아모는 요가매트를 도로 접고 차로 돌아왔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 덕에 순간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

눈을 떠 보니 두 시간이 채 안됐다.

아직 온 만큼을 더 가야 다음 목적지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아 떠날 채비를 했다.



















장거리 운전을 하느라 지친 몸을 풀어주기 위해 간간히 이름모를 마을에 들렀다.  

사람이 없을 것만 같은 곳, 지나는 어느 곳이든 우리네 삶의 모습이 무척 닮아있는 점이 신기하다.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해가 지고 나서야 모리제라띠에 도착했다.

모리제라띠는 그가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발견한 장소로,

사진 상 자연동굴이 멋있어보였던 곳이라 꼭 와보고 싶었다.

낯설고 너무나 조용한 곳이라 첫 인상은 으스스했다.













주변을 둘러보기 위해 동네 안 쪽으로 들어갔더니 강아지 한 마리가 탑을 보고 뛰어왔다.

고양이 서너 마리와 개 두 마리가 이 마을의 주민이라는 듯 목줄 없이 유유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어느 집 앞 계단 앞에 강아지의 주인으로 보이는 듯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분명 마을이지만 분위기가 그러했는지 사람이 산다는 사람에 새삼 놀랐다.

적어도 해가 지고 나면 아무도 없을 줄 알았다.

































그 옆에는 아직 영업 중인 바겸 레스토랑이 있었다.

이 곳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세수까지 하고 나왔다.

주민으로 보이는 두 청년은 한국이 어딘지 모르는 듯했지만 아는 척 하며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냈다.

외지인과 현지인이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그 사이 나는 주변 골목을 조사하듯 조심스레 사진을 찍었다.

바가 있는 이 곳이 시내의 전부인듯 보였다.

한눈에 시내가 훤히 보이는 셈이다.





































































나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서로 다 알만큼 작은 마을인 것도 좋았다. 

조용하고 낡고, 인위적인 것 하나 없었다.

아마 노란 조명이 한 몫 거들었을테다.

첩첩산중의 밝은 달, 멀리 보이는 조금 더 번화한 마을의 불빛 덕에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여행책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곳이니,

아무도 모르는 비밀의 문을 열어 우리만 아는 세계를 발견한 듯한 희열이 느껴졌다.  











































우린 꽤 노련하게 

잘 곳을 찾고 짐을 옮기고 시트를 평평하게 만들고 침낭을 펴고 잘 준비를 했다.

몸을 누이니 창 밖으로 새까만 하늘이 보였다.

그 위에는 조금 전에 내린 빗방울이 빛을 받아 수많은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찬 공기가 팔뚝에 닿았다.

우리가 내는 부스럭거림을 제외하고 적막만이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다시 창문을 보니 빗방울은 흐르지 않고 나뭇잎은 미동도 없었다.

마치 우리가 몸을 누인 이 공간만이 시간이 멈춘 듯.